진로탐색에세이 (2)
- 이야기/무겁게
- 2019. 12. 20.
현재 나는 의학에서 체득의 가치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1년 동안 기초의학을 공부하면서 여러 교수님들께서도 지금 공부하는 내용보다는 몇 년 뒤 병원에서 직접 배우는 내용들이 훨씬 기억에 잘 남고,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기초의학이 덜 중요하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임상의학의 발전에서 기초와 중개연구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방대한 지식이 쌓일 때 조금이라도 잊는 것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나의 망각은 곧 환자의 건강과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누가 되었던 단 하나라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으로 공부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음을 느낀다. 그렇기에 실습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 실습에서 최대의 효율을 내기 위해서는 이론적인 측면에서 최대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외과 레지던트 선생님이 해주셨던 전공의법에 대한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주 100시간 이상 근무에서 주 88시간이 된 것은 어떻게 보면 안타깝다는 이야기다. 실질적으로는 88시간이라는 시간도 체득하기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모두가 충분한 수련 시간을 통해 상향 평준화된 의료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법적으로 그 시간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예전보다는 의료수준이 떨어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율적으로 시간을 투자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셨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감하며, 앞으로 의사집단뿐만 아니라 모두가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제도적인 측면을 고찰해보았다. 의과대학에 입학하기 전에는 의료 수가 등에 관한 제도에 깊은 관심은 없었다. 앞으로 환자들에게 공감하며 친절한 의사가 되리라고 막연하게만 다짐했을 뿐이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한계를 깨야 하는 상황이 많이 있음을 느낀다. 제도 또한 한계를 넘어서야 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만약 부당한 제도가 있다면 그 안에서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나갈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을 위해서라도 직접 그 제도를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수정해 나가야 한다.
첫 번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사들의 수입을 지급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신의 능력에 따라 자본을 분배받는 사회이다. 많이 일 했으면 투자한 노력과 시간의 대가로 더 많은 소득을 얻고, 반대로 쉬는 사람들은 그만큼 수입이 적어야 하는 것이 기본 수칙이다. 하지만 의료에서는 무조건 같은 잣대를 들이밀 수가 없다. 의사에게 소득이란 환자의 완치를 의미하고, 곧 건강한 사람이 어딘가 아파서 환자가 되어야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불가피한 모순의 고리가 형성되게 된다. 모든 사회가 국민의 행복과 건강 증진을 바라는 데에 비해 건강이 악화 되어야 의사는 소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결책다운 제도로 나온 것이 바로 정부에서 의사들에게 일정 금액을 미리 지급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의사는 환자들을 치료하지 않을수록 많은 수입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더욱 연구에 매진하거나 환자를 돌보는 것에 열심히 임하게 될 것이다. 바로 긍정적인 행동이 양심적인 행동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비교적 최근에 이슈가 되었던 신해철 법이다. 이 법은 환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다. 하지만 의사의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행동이 꼭 양심적인 행동과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고찰을 해 볼 수 있다. 이 법에 의하면 의사가 수술을 해서 환자에게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환자는 자유롭게 그 의사를 소송할 수 있다. 이전까지는 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의사 때문에 환자가 불가피한 의료사고인지, 의사의 실수에 의한 의료사고인지 구분을 못 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환자와 보호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이다. 그러나 이 경우 의사들이 수술을 꺼려하는 경우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소송을 피하는 것이 의사 입장에서는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환자가 엄청난 극한 상황이 아니면 수술을 계속 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이라도 수술 시 환자의 사망 확률이 증가한다면 의사는 본인의 긍정적 행동을 좇아 수술을 거부할 수도 있다. 앞선 예와는 달리 의사의 긍정적 행동과 양심적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이다.
올바른 의료제도는 이처럼 의사의 양심적 행동과 긍정적 행동을 일치시키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런 제도를 비롯해 다양한 방향으로의 진로 탐색을 계속하면 더 적극적으로 환자를 위하는 의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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